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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상식

영악하게 퇴사하는 방법

일할 때보다 떠날 때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떠난 자는 명예를 회복할 방법이 없고 옛 동료는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다. 11가지 명제로 정리한 퇴사의 노하우.

당신은 떠날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직장 생활의 절대적인 제1명제는 내가 우선이다. 이 명제는 퇴직을 생각하거나 실행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우선이니까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 기존의 조직을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게 중요하다. 내가 우선이니까 앞뒤 안 보고 나가겠다는 건 짧은 생각이다. 당신의 평판은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고 당신을 따라온다. 내 위생을 위해 청결을 유지하는 것처럼 내 평판을 위해 아름다운 게 좋다. 적어도 추하지는 말아야 한다.

회사를 떠나도 인간관계는 유지할 수 있다

직장은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사람도 만난다. 당신이 일을 잘하고 사람들과의 사이도 괜찮았다면 당신의 이직과 기존 동료 들과의 인간적인 관계에는 아무 영향도 없다. 당신이 일을 못했지만 인품이 훌륭하다면 회사를 떠났을 때 전 동료와의 관계가 더 좋아질 수도 있다. “일을 잘했지만 인품이 별로였다면?”이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사실이런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인품 역시 업무 능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회사를 떠나서 예전 동료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평소의 자신을 돌아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6개월과 1개월을 기억할 것

보통 회사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간은 6개월 재직이다. 살다보면 정말 실수로 너무너무 이상한 회사에 들어간 탓에 비행기에서의 긴급탈출처럼 앞뒤 안 가리고 그만두는 게 우선일 때도 있다. 그런 난처한 상황에도 6개월을 기억하면 좋다. 6개월 안에 그만둔다면 해당 재직이 공식 경력으로 인정받을 확률이 무척 낮다. 연봉협상 등의 증빙자료로 쓰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안 그래도 지옥 같은 시간인데, 그게 헛된 기간으로 남았다면 얼마나 아까울까. 반대로 이력에서 지우고 싶다면 6개월이 되기 전에 퇴사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이력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 이력서에 빈 시간으로 남겨놓아도 괜찮다. 이렇든 저렇든 6개월을 기억해둘 필요는 있다. 그리고 그만둘 때는 통상 그만두기 1개월 전에 피고용주 혹은 인사 책임자에게 말하는 게 순리다. 1개월 전 통보는 예의인 동시에 당신의 퇴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트러블 메이커와의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인품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직장이라는 소우주에서는 인간관계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만약 당신의 인품에 문제가 없다면 당신을 짜증스럽게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모이다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어느 집단에든 하나는 있고, 모두들 그 사람이 그 집단의 문제임을 알고 있다. 그런 사람과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도, 심지어 최악의 경우 그 사람과의 문제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해도 사람들은 누구 잘못인지 다 안다. 세상은 별로 좋은 곳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나쁜 곳도 아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여기가 싫어서’는 좋은 이유가 아니다

어딜 가든 분명 싫은 구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단점의 종류는 다를 수 있어도 양 자체는 거의 같은 법. 새 직장에도 그곳만의 싫은 점이 분명 존재한다. 이 사실을 일찍 깨닫지 못한다면 잘못된 세탁과 수선을 반복한 옷처럼 이상한 모양의 커리어를 가지게 된다. 이상해진 옷을 오래 입을 수 없는 것처럼 이상한 모양의 커리어로도 사회생활을 오래 할 수는 없다.

중요한 이야기는 문자로 하는 게 아니다

정보통신과 의사소통 기술이 발달하며 21세기는 전자우편과 문자메시지라는 편리한 의사소통 수단을 갖게 되었다. 메신저 앱은 상대방의 확인 여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효율과 정성은 반비례하는 법. 편리할수록 예의는 떨어진다. 그러므로 “그만두겠습니다” 같은 중요한 이야기는 얼굴을 마주 보고 할 필요가 있다.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니다. 고용주가 고약했거나 일하면서 나쁜 일이 있었어도 인사는 제대로 하는 게 당신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그 만두겠다는 말을 하는 게 불편하단 사실은 모두가 안다. 용기가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살다보면 언젠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당신의 인수인계가 당신의 평판

이런저런 일을 거쳐 무사히 퇴사 통보를 알린 당신에게는 인수인계라는 마지막 절차가 남아 있다. 보통 문서 자료를 남기거나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달하며 인수인계가 이루어진다. 인수인계가 중요한 이유는 당신의 평판 대부분이 인수인계 사항으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한 자세히,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싶은 것까지 전달하는 것이 좋다. 인수인계는 퇴사 후에도 이어지니 후임자의 전화를 잘 받아주는 것도 잊지 말자.

컴퓨터 정리, 자료 백업을 확실히 해두는 게 좋다

평가가 좋았던 보고서, 소중한 자료, 잘 짜둔 프레젠테이션 파일 툴 등 당신의 노고가 담긴 자료를 잘 챙기는 게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서 정말 중요하다. 물론 사규에 어긋날 정도로 중요한 자료를 가지고 나가는 건 당연히 금물이다. 필요한 자료를 가지고 나가는 것만큼 중요한 건 내가 있던 자리를 확실히 치우는 일이다. 특히 ‘카카오톡 받은 파일’ 폴더는 잊지 말고 꼭 지우고 나갈 것!

다른 곳이 좋아서 옮기는 걸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지금 직장에서 한계를 느낄 수 있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을 수도, 지금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일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느끼는 감정이다. “맥주를 마시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요”와 비슷한 정도의 보편성이 있는 것이다. 확고하고 발전적인 이유가 있다면 이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마찬가지다. 인지상정에 부합하는 일은 딱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최고의 복수는 성공적인 이직이다

복수하고 싶어서 직장을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저런 일을 하는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저 밉살스러운 팀장이 엄청 골탕 먹겠지?’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매일 서울에만 50만 명은 될 것이다(더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복수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 남이 상처를 주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복수는 내가 더 잘되는 것, 즉 성공적인 이직이다. 복수 때문에 퇴사하고 싶다면 우선 단걸 먹고 흥겨운 노래라도 들으면서 진정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이야기를 읽고도 분이 안 풀린다면 맘대로 퇴사해보는 것도 좋다

내가 퇴사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남들이 골탕 먹는 것이 잠깐이라고 해도 화를 참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정말 한 번쯤은 마음대로 퇴사해보는 것도 좋다. 두 번 그럴 수는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고. 아무튼 최고의 교훈은 스스로의 경험에서 온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퇴사하는 건 최악이다

사람은 혼자서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집단을 만든다. 이 말은 곧 회사에서의 당신 자리는 기본적으로 언제나 대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들을 귀찮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당장 그만둬버려야지’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 당신이 어디서 무슨 일을 했든 당신의 빈자리는 당신 예상보다 훨씬 빨리 채워진다. 남는 건 당신의 평판에 붙을 무책임하다는 꼬리표뿐. 나쁜 평판은 좋은 평판보다 훨씬 빨리 퍼지고 수명도 길다.

맘대로 퇴사하면 어떻게 될까?

백문이 불여일견, 진짜로 퇴사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뭐가 좋았어? 놓친 건 없었어?

"첫 직장은 정말 이상했어요. 대표는 어리고 거만한데 돈도 없어서 월급이 체납되기 일쑤였죠. 실질적인 실무 총책임이었던 부장은 무책임하고 나태한 데다가 회사 돈을 자기 마음대로 썼어요. 게다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일을 너무 많이 시켰어요. 결국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어요. 그래도 저는 마지막까지 예의를 지키려 1개월 전에 통보하고 인수인계도 최대한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부장은 제가 나가는 날 출근조차 하지 않았어요. ‘이 회사를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5년 후, 저는 같은 업계의 조금 더 좋은 회사에서 일해요. 부장은 업계에서 자취를 감췄어요. 업계에서 알아주는 사기꾼에 협잡꾼이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죠. 전 살아남았어요. 이게 복수라고 생각해요." 임진선(29세·웹 디자인)
"대표는 착했지만 일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저를 존중해주려 하긴 했지만, 일을 이상한 방식으로 시킨 후에 그게 왜 잘못됐는지를 아예 이해하지 못했어요. 대들고 싸우며 당장 그만 둬야겠다고 몇 번씩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만두고 아직도 새 직장에서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니 그들이 철없어 보이더군요. 결국 친구들을 거울 삼아 꾹 참고 상식적인 절차를 거쳐 퇴직했어요. 요즘도 가끔 생각해요. 확 뒤통수를 쳤어야 했을까? 안 그랬던 게 나았던 것 같아요." 박희윤(32세·학원강사)
"큰맘 먹고 직종을 바꿨던 적이 있어요. 마침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다리가 되어 좋은 자리가 들어왔어요. 연봉도 50% 가까이 올랐고 근무 요건도 좋아 망설임 없이 승낙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전에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5개월 만에 퇴사했죠. 그런데 새 직장의 인사팀이 이력서를 받더니 기존 직장의 연봉을 인정해줄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업종도 다르고 재직 6개월 이하 경력은 인정도 못해준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달만 더 있을 걸 그랬어요. 괜히 연봉 깎고 이직한 기분이에요." 정연주(33세·스포츠 마케팅)

"직전 회사가 너무 싫어서 ‘다리를 불태운다’는 마음으로 일했던 자료를 다 날려버리고 나왔던 적이 있어요. 그 회사에서 만들었던 모든 것들과 완벽하게 이별하고 싶었죠. 그런데 같은 업종에서 일하면 보고서 폼이나 프레젠테이션 폼, 액셀 서식 같은 건 다 비슷하잖아요. 그때 많이 후회했어요. 조금만 더 참을 걸. 그 자료만 있었어도 일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남민정(29세·회계법인)